‌결혼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을 터였다. 지금도, 밝은 햇빛이 눈가를 두드렸지만 그녀는 언제나처럼 숙면 중이었다. 방문이 열리고 발소리가 다가온다. 커다란 손이 이불을 걷어냈다. 그녀는 한기 때문인지 어깨를 움츠렸지만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다. 오늘도인가. 익숙하다는 한숨과 함께 따뜻한 것이 그녀를 끌어안았다. “마데.” 단단한 팔이 허리에 감기고, 낮은 목소리가 부른다. 대답처럼 웅얼거리는 소리가 나왔다.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래봤자 깨우지 말라는 소리일 것이다. 소스케가 그녀의 움푹 패인 쇄골에 가볍게 키스했다. 일어나. 동시에 커다란 손이 흰 나시 속으로 침입했다. ‘배 따뜻하네.’ 깨우지 말라는 듯이 이리저리 피하는 마데유키를 끝까지 추격해 키스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마침내 그녀가 졌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나 깼어, 소스케. 깼다구…….” 아직 졸음기가 남은 목소리였지만 이번에는 확실히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이었다. 소스케가 마지막으로 콧방울을 가볍게 깨물고는 떨어졌다. “좋은 아침.”
“지금 몇 시야?” 한참 뒤에 그녀가 멍청하게 물었다.
“열한 시 이십 분 전.”
“나 다시 잘래.”
그녀가 억울하다는 듯이 어깨를 앞뒤로 흔들었다. 소스케가 귀엽다는 듯이 목울대를 울렸다.
“얼른 나와, 아침 먹자.”
그가 단호하게 말하고 침실을 나갔다. 잠에 취했던 코가 그제야 음식 냄새를 맡았다. 맨날 아침부터 깨우고……. 사사키 마데유키는 침대에 누운 채로 눈알을 굴렸다. 잡지에서나 봤을 법한 세련된 스타일의 베드룸. 관리가 어려울 것 같은 새하얀 침대 시트. 테이블에 있는 장미는 무려 생화였다. 여행 사이트를 열심히 검색해 찾은 호텔이었다. 맞아, 여기 이탈리아였지. 고민하던 그녀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몸을 일으켰다. 여기까지 와서 침대에만 누워있는 건 아까우니까. 새하얀 종아리가 붕 떠다니는 것처럼 가볍게 걸었다. 방을 나서기 전, 허리까지 내려오는 아름다운 분홍색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거울을 보던 마데유키가 픽 웃었다. 아무렴 어때, 소스케는 자신이 무슨 머리를 해도 좋아할 것이었다. 부스스한 채로 문가에 서자, 소스케가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손짓했다. 이리 와, 마데. 거봐. 오늘도 완벽한 하루였다.
 
식사는 룸서비스로 배달되어있었다. 둘은 리빙룸의 쇼파에 앉아 담요를 두른 채로 아침을 들었다. 그는 평소라면 담요를 빼고 오라고 했을 텐데, 오늘은 “나도.”라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어느새 소스케의 품에 안겨있었다. ‘따뜻하네.’ 뭐, 새삼스러운 생각이었다. 그는 원래 체온이 높으니까.
“아, 맛있네.”
소스케가 그녀의 어깨에 턱을 얹은 채로 수프를 마셨기 때문에, 마데유키는 그의 목울대가 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마셔보라며 컵을 내밀었다. 양송이 수프에 반쯤 젖은 바삭한 빵조각이 떠있었다. 맛있었다.
어느 정도 배가 찼다 싶을 때 포크를 내려놓았다. 소스케가 바라보았지만 모르는 척 했다. 하고 싶은 말이야 뻔했다. 그것밖에 안 먹어?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이미 몇 번이나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원체 입이 작은 사람이었고, 소스케는 곱빼기부터 시작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너무 조금 먹다가 쓰러지기라도 할까봐 걱정되는 모양이었지만, 마데유키는 식습관을 바꿀 생각은 없었다. 무엇보다 배부른 느낌이 싫었다. 그녀는 무슨 말을 듣기 전에 “잘 먹었습니다. 아, 배불러.”하고 선수 쳤다. 소스케가 말없이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너 너무 말랐어.”
학생 때부터 자주 한 말이었다. 그러니까 벌써 몇 년째다. 그녀가 아무것도 못 들은 척 손톱을 봤다.
“안을 때마다 뼈가 부딪쳐서 아프잖아.”
잠시 후 속뜻을 파악한 그녀가 벌떡 일어났다. “아프다는 사람이 무슨……!”
“뭐가?”
소스케가 능청스럽게 바라보았다.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낯짝이었다. 따지고 보면 아침에 못 일어난 것도 너 때문이면서. 어떻게 그렇게 뻔뻔해? “어제, 어제…….” 그녀가 억울하게 더듬거렸다. 소스케가 어디 한 번 해보라는 듯이 한쪽 눈썹을 들어올렸다. 그녀가 입을 다물고 다시 주저앉았다. 이 주제에 관해서는 한 번도 소스케를 이겨본 적이 없었다. 뭐라고 말하든 말려들 게 뻔한데, 아침부터 승산 없는 싸움을 시작하고 싶진 않았다.
“됐어.”
너 원래 그렇게 미꾸라지처럼 말하는 사람 아니었잖아. 볼멘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소스케가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니까 잘 먹으라는 뜻이야.”
그가 달래듯이 말하며 입가에 포크를 내밀었다. 소시지. 먹기 싫은데. 소스케는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그의 초록색 눈은 단호했다. 어쩔 수 없이 한 입 베어 먹으면서, 마데유키는 “……아무리 그래도 너만큼은 못 먹어.”하고 툴툴거렸다.
 
식사를 마치고 시칠리아의 거리로 나왔다. 이탈리아는 일본보다 하늘이 넓었고, 하루가 48시간인 것처럼 여유로웠으며, 매 걸음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오늘도 아름다운 풍경이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 들릴 곳은 몬레알레 대성당이었다. 결혼식을 올릴 장소는 직접 고르자는 이유로 시작한 여행이었다. 하지만 낯선 거리를 탐험할수록, 그녀는 식을 올리지 않고 평생 이렇게 돌아다니며 사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스케와 함께라면.
“소스케?”
인기척을 느낀 마데유키가 활짝 웃으며 뒤돌아봤다. 그리고 유감이라는 듯이 앓는 소리를 냈다. 이런……. 매표소 쪽을 보자, 소스케는 아직 창구에서 표를 구매하는 중이었다. 사람이 너무 많고 정신 없어보여서 따로 기다리기로 한 거였는데, 역시 같이 갔어야했다. 소스케를 향한 시선을 끊고 한 남자가 끼어들었다. 자신만만한 미소가 꼭 자신을 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안녕. 금발에 푸른 눈이 인상적인, 전형적인 백인 남자였다. 멀리서부터 네 아름다운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어. 그의 영어에는 이탈리아어의 억양이 남아있어서 잠꼬대나 주술 같기도 했다. 하지만 묘한 매력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네 눈동자라는 바다에 빠져서 오조 오억 년 헤엄치고 싶어……. 이게 자신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면 마데유키는 꽤 웃기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녀가 곤란한 미소를 짓자 남자가 황급히 덧붙였다. 나는 위험한 사람이 아니야. 나는 이런 일을 하고, 이런 걸 좋아해. 너에게 커피 한 잔을 살 영광을…….
별안간 커다란 등이 그녀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옷 위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어깨와 근육질의 몸이었다.
“She married me.”
고압적인 목소리가 경고하듯이 울렸다. 소스케! 마데유키의 얼굴이 단번에 밝아졌다. 세상의 온갖 행복함을 담은 판도라의 상자 같았다. 소스케가 알고 있다는 듯이 그녀 쪽으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기다렸지. 하지만 남자를 향할 때는 명백하게 위협하는 얼굴이었다. 그가 불쾌한 표정으로 턱짓했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했다. 외국인이 바로 깨갱하며 물러났다. 상황 종료.
“뭐야, 괜찮아?”
소스케가 얼른 살펴보았다. 타지에서 헌팅 당했다고, 당사자보다 더 당황한 것 같았다. 그녀는, 잘난 척 하는 건 아니지만 익숙한 일이었기 때문에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응, 아무 일도 없었어.”
역시 이탈리아어 보다는 일본어의 억양이 남은, 유창하지 못해도 진심이 담긴 영어가 좋다고 생각하면서.
괜찮다고 했는데도 소스케는 어딘지 안심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의 표정이 어찌나 걱정하는 빛을 띠고 있었는지, 방금 전에 낯선 남자에게 위협적으로 눈을 번뜩인 사람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만 웃어버렸다.
“정말 괜찮아. 네가 와줬잖아.”
“……그럼 다행이고.”
그가 뒷머리를 거칠게 헝클어뜨렸다. 마데유키는 그를 올려다보다가 맛있는 치즈를 상으로 받은 생쥐처럼 히히 웃었다.
“거짓말쟁이.”
소스케는 잠시 후에 이해했다. 그래, 엄연히 말하자면 거짓말이었다. 그들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연애했고, 벌써 몇 년째 동거했으며, 이제 일상에 너무 자연스럽게 서로가 스며들어있었지만, 그래도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식을 준비하기 위해 이 낯선 곳으로 날아왔으니까. 만약 정말로 결혼했더라면, 그래서 그 증거가 그녀의 왼손 약지에 있었다면 애초에 이런 귀찮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싫어?” 소스케가 답을 알고 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럴 리가.”
예상한 대답과 함께, 차갑고 얇은 것이 그의 손목을 구속했다. 소스케는 온몸이 묶여 심해에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과장하지 말자. 그냥 애인이 손을 잡은 것뿐이었다.
“얼른 결혼해서 옆에 묶어둬야겠어.”
사사키 마데유키가 순수한 미소를 지으며 올려다보았다.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미소였다. 소스케는 저게 어쩌다 나온, 별 의미 없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때때로 마데유키를 절대 뿌리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자신의 힘이 훨씬 센데도 말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감상은,
안 묶어도 안 날아가.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스러운 분홍색 머리카락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는 건 직감했다. 그녀가 자신에게 보이는 애정이, 집착이 평범한 애인 수준을 넘은 것도 알고 있다. 오래된 일이었다. 사사키 마데유키에게는 특이한 원인이 있다. 그녀는 본인의 눈, 코 입, 웃는 방식마저도 조각내서 분석하고, 책잡히지 않을 아름다움만 전시한다. 언제나 친절하게 웃고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혀에 올리지 않는다.
무서우니까.
그렇지 않은 자신에게는 아무런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니까. 저 작고 귀여운 2.5kg의 머리통 안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이 오고 가는지 소스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새하얀 공도 굴곡진 렌즈에는 비틀려 비출 수 있었다. 너도 날 떠날 준비를 하는구나. 소스케가 바라는 것은 그저 마데유키의 행복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냥 이렇게 말했다.
“그래, 얼른 묶어둬.”
사월의 신부가 되겠네요, 유키 상! 사사키 마데유키는 떠올린다. 결혼 소식을 전했을 때 마츠오카 고우는 좋은 시기를 골랐다고 축복해주었다. 꽃이 피는 계절이잖아요. 앞에서는 맞장구 쳤지만 그녀는 사월의 신부이든 오월의 신부이든 관심 없었다. 어디 보이지도 않는 산골짜기에서 꽃이 피든지 말든지 알 바 아니었다. 다만 마음에 들은 것은 끝이었다.
꽃은 스스로는 움직이지 못해, 핀 자리에서 영락없이 끝을 맞이해야한다. 태풍이 불어도 벌레가 갉아먹어도 도망칠 수 없다. 전봇대 뒤나, 마루 아래나, 아니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절벽 끝에 피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죽이는 것. 나 영원히 이곳에 머무르겠다는 선고. 뿌리를 내린다는 이름으로 귀속되는 것이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그녀는 굳이 이 계절을 선택했다.
결혼식은 4월.
눈이 녹고, 야마자키 소스케가 사사키 마데유키에게 기꺼이 갇히는 날.
 
돌아가는 길에 마트에 들렸다. 길거리 시장을 지날 때도 생각했지만 일본에서는 보지 못한 신기한 물건이 많았다. 이탈리아는 해가 지면 위험하기 때문에 밖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았다. 그들은 아쉬운 마음으로 처음 보는 간식을 내려놓으며 익숙한 식재료를 골랐다. 나중에 여유를 가지고 다시 방문하자고 약속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호텔에서 일식을 주문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둘은 굳이 식재료를 사서 직접 요리하기로 했다. “정말 괜찮겠어?” 계산 전에 소스케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가 양식만 먹으니까 물린다고 한 건 일식 레스토랑이라도 가자는 얘기였지, 여기까지 와서 맨날 먹은 자신의 요리를 먹자는 의미가 아니었다. 소스케와 달리 그녀는 양식도 잘 먹었고, 본토의 나폴리탄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앞으로 몇 번이나 올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응. 부탁할게.” 하지만 마데유키는 망설임 없이 그렇게 말했다. 이탈리아에서 소스케가 만들어주는 저녁을 먹는 일이야말로 가장 값진 경험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전 세계에서 사사키 마데유키만 가능한 일인 것이다.
짐은 나누어 들었다. 따로 손잡이가 없는, 재활용지로 만든 종이봉투. 이것도 일본에서는 자주 볼 일 없는 물건 중 하나였다. 소스케가 전부 본인이 들겠다고 했지만 마데유키는 단호하게 직원에게 봉투를 두 개 달라고 했다. 이건 소스케가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주제였다.
그는 마데유키를 만나고 무엇이든 왼쪽으로 드는 습관이 생겼다. 오른팔로 뭐라도 할라치면 그녀가 걱정했기 때문이다. 어깨 수술이 성공한 지금도 이 점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재발을 걱정하고, 소스케는 걱정시키고 싶지 않다.
덩달아 마데유키는 언제나 오른손으로만 무언가를 들게 되었다. 소스케와 손을 잡아야하니까. 안 그래도 적었던 짐은 나누어 들자 훨씬 가벼워졌다. 굳이 나누어 드는 것도 웃길 정도였다. 그냥 내가 들게. 핸드폰을 확인하기 위해 손을 놓았다 잡는 걸 두 번 했을 때 소스케가 말했다. 마데유키가 미소 지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이걸 든다고 어깨에 무리가 갈 리 없다는 건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다. 바보 같긴. 소스케가 못 이긴다는 듯이 픽 웃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흰 원피스 자락이 무릎에서 살랑였다. “오늘 어땠어?” 물음에 소스케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좋더라. 난 여기가 제일 마음에 들었어. 너는?”
“나도.”
“그럼 결정 났네.”
식을 올릴 곳을 찾기 위해 며칠에 걸쳐 근방에 있는 성당을 모두 살펴보았다. 꿈같은 나날이었다…… 면 좋았겠지만 불편한 일도 있었다. 낮에 헌팅 당한 것처럼 당황스러웠던 일도 있었고, 샤워기에서 물이 안 나와서 곤란하기도 했다. 이탈리아는 석회암이 어쩌구저쩌구, 사람을 불러서 금방 해결되긴 했지만 문화 차이라는 건 무시할 게 못되었다.
딱 잘라 말해서, 마데유키는 이런 모험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남이 개척해놓은 안전한 길을 가는데 불만이 없었다. 웨딩 컨설턴트에게 맡기고, 플랜 몇 가지만 점검하면 되는 것을 왜 굳이 이탈리아까지 와서 고생한단 말인가?
소스케를 만나기 전까지 그렇게 믿었다.
“내일은 드디어 정장이네. 소스케 멋진 옷 입혀야지.”
그녀가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막막한 한숨을 쉬었다.
“난 그냥 직원이 추천하는 걸로…….”
“절대 안 돼. 세상에서 제일 멋진 신랑으로 만들어줄 거야.”
야마자키 소스케가 그녀를 꿈꾸게 했다. 세상에서 단 하나 사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소스케로 인해서 모든 게 바뀌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요즘 세상은 내가 무엇을 원해야하는지도 정해준다. 괜찮다가도 문득 문득 숨이 막혀오고 모든 걸 끝내고 싶어진다. 이제 그만! 그때 소스케가 손을 잡아준다. 그는 강요하지 않는다. 닦달하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마데유키를 바라본다. 힘들면 쉬어가면 돼. 그러면 그제야, 실은 끝내고 싶지 않다고. 최선을 다 하고 싶다고 깨닫는다.
“소스케는 뭘 입어도 세상에서 제일 멋지겠지만.”
“하지 마.”
장난스럽게 덧붙인 말에 소스케가 질색했다. 민망해서가 아니라 진짜 소름 돋으니까 그만 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이, 귀여워. 마데유키가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강한 바람이 불고, 시야가 온통 분홍빛으로 뒤덮였다. 벚꽃이 만개했다.
“바람이 세네.”
“으응.”
그럴 때마다 소스케가 머리를 정리해주었다. 그럴 때 그는, 아마 본인은 모르겠지만, 아주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굵은 손가락이 귀를 쓸어내리는 순간을 좋아했다. 단지 그것뿐인 동작이었지만 어떤 의미가 함유되어있는 것 같았다. 그건 완벽했다.
마데유키가 충동적으로 한 발짝 다가가며 발꿈치를 들었다. 눈까풀이 반쯤 감기고 속눈썹이 그늘을 드리운다. 소스케가 눈치 챘다는 듯이 픽 웃고는 고개를 숙였다. 길거리에서 키스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은 이탈리아의 완승이었다. 우리 여기서 살자. 좋아. 어느새 커다란 손이 뺨을 감싸고 있었다. 코가 얽히며 서로의 눈에 서로만이 비출 때였다. 가슴께에 들고 있던 종이봉투가 먼저 부딪쳤다. 탁.
분위기가 깨졌다.
“나눠들자고 우기니까 그렇잖…….”
어이없다는 듯이 웃는 소스케에게 입을 맞췄다. 그가 거칠게 머리를 헤집었다. 한동안 서로를 추구했다. 이번에는 종이봉투가 부딪쳐도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결혼을 해도, 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런 키스를 하겠지. 항상 함께하면서도 지금이 유일한 순간인 것처럼 숨결을 나누고, 떨어지는 순간이 불필요한 것처럼 서로에게 얽매이겠지. 무겁지 않은 짐이라도 나누고, 필요하다면 투탁거리면서 같은 보폭으로.
“좋아해.”
그녀가 헐떡이며 말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의 그것이었다. 나도.
“좋아해, 마데.”
바람이 불면, 익숙한 섬유유연제 냄새 너머로 희미하게 소스케의 살결과 땀 냄새가 풍겼다. 아까도 이 냄새를 맡았다.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 콘 하나를 나누어먹을 때도, 낯선 남자로부터 지켜주려고 가로막고 섰을 때도, 아침에 깨워줄 때도. 사사키 마데유키는 언제나 이 냄새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녀는 언제나 야마자키 소스케의 손길에 잠에서 일어나고, 그가 준비한 식사를 먹고, 그의 손을 잡은 채로 걸어 나간다.
네가 나의 구원. 너만 있다면 어디까지라도 걸어갈 수 있어.
결혼 후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