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넌 결혼할 생각은 따로 없어?”
 
뚝. 화관을 만들기 위해 봄꽃을 꺾던 새하얀 손이 허공에 멈추었다.
자신은 성장이 끝난 어른이고, 굳이 따지자면 혼인 적령기의 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결혼과 관련된 질문을 받는 건 처음도 아니었고 낯설지도 않았지만, 질문을 한 상대가 너무나도 의외인 탓에 잠깐 머리가 굳어버리고 말았다.
 
“갑자기 그건 왜 묻나요, 왕자님.”
 
로키는 제 시녀의 반문에 눈썹을 까딱였다.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건 언어도단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갓난아이일 때부터 왕족의 시녀로 길러지고 그렇게 자라온 올룬이 모를 리는 없을 텐데. 자신이 던진 질문이 당사자에겐 얼마나 파괴력이 있었는지 모르는 어린 로키는 시선을 돌리며 볼멘소리를 냈다.
 
“물으면 곤란한 질문이었나?”
“곤란하지는 않지만 의외이긴 했습니다. 왕자님이 그런 걸 궁금해 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어째서 궁금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 내가 내 담당 시녀에게 그렇게 매정할 것 같나? 아니면 어린애는 혼인 같은 건 먼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해 관심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라도?”
 
굳이 따지자면 저 예시 중에선 후자이긴 했지만,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올룬이 생각한 이유는 ‘어찌되든 상관없다 여길 것 같아서’ 에 더 가까웠다. 궁의 시녀는 제가 모시는 왕족의 허락 없이는 결혼 할 수 없고, 결혼한다고 해서 궁을 나가야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제 결혼 여부는 물론 결혼할 상대도 고를 수 있고, 결혼한 후에도 제 곁에 둘 수 있는데, 굳이 그걸 신경 쓸 필요가 있는가.
올룬은 그 물음에 고개를 저었었다. 그렇기에 오늘 로키의 질문은, 그에게 의외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누군가는 내가 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할지 몰라도, 난 너를 아끼고 있어.”
“알고 있습니다.”
“그래? 속으로 ‘그럴 거면 덜 애먹이지’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고?”
“원하신다면 제가 자발적으로 그만 두게 할 정도로 괴롭히실 수도 있으실 텐데, 이 정도는 별거 아니지요.”
 
이렇게 말을 청산유수로 하는 건 분명 자신의 어머니에게 배운 것이겠지. 이럴 때 보면, 올룬은 프리가와도 많이 닮아있다. 로키는 제 시녀 뒤로 보이는 희미한 어머니의 잔상에 고개를 까딱이고, 토끼풀을 엮어 만든 화관을 상대에게 내밀었다.
 
“그래서, 대답은?”
“없습니다. 특별히 마음에 둔 이도 없고,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매력도 느끼지 않으니까요.”
“성을 바꾸고 누군가의 여인으로 속박되기 싫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저는 그저 여기서 왕자님과 왕비님을 모시고 사는 게 행복합니다.”
 
소박하다면 소박하고, 허무하다면 허무한 인생관이다. 바람이 불면 방향에 맞춰 흔들리고 비가 오면 고개를 숙이는 들꽃 같은. 유연하고도 돋보이려 하지 않는 삶.
마법이 안 통하는 특별한 체질을 가지고 있으면서 정작 마음가짐이 이렇게 겸손하니 얼마나 아까운가. 로키는 소리 없이 혀를 찼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출세할 수 있고, 자신이라도 그러려고 할 텐데.
물론 둘째 왕자의 시녀라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부와 안정이지 영광이 아니었다. 명예와 영광을 중요시 하는 아스가르드인에게 시종이나 시녀는, 전사보다 나을 게 없는 차선의 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 차선을, 제 시종은 기쁘게 받아들이고 열심히 수행한다.
 
“아쉽군.”
“무엇이요?”
“이런 훌륭한 여인의 반려가 될 수 있는 사내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
“과찬이십니다.”
 
로키가 넘겨준 화관에 꽃을 꽂아 장식한 올룬은 화관을 상대에게 돌려주었다. 하지만 로키는 되돌아온 화관을 제 머리에 가져가지 않고, 두 손을 쭉 뻗어 제 시녀의 머리 위에 화관을 얹어주었다.
 
“그럼 내 반려가 되어주지 그래.”
“…네?”
“정말로 결혼하자는 건 아니야. 하지만 생각해보면, 넌 어차피 혼인은 하지 않을 거라 했고 그렇다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계속 내 시녀로 있겠지.”
 
이 자그마한 머리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올룬은 자신보다 몇 천살은 어린 작은 왕자님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평소에도 꽤가 많고 재주가 많은 건 알았지만, 지금의 제안은 어떻게 머리를 굴려서 거기까지 도달한 건지 감도 오지 않았다.
 
“그냥 놀이일 뿐이야. 하객도 서약도 없는 소꿉놀이일 뿐이다. 신랑 역은 내가 할 테니, 신부 역으로 어울려 주었으면 하는데.”
“이건 또 무슨 장난인지 모르겠네요, 왕자님.”
“장난이 아니야. 놀이라니까? 나는 아무에게나 이런 놀이를 권하지 않아.”
 
대화를 하면서도 그 틈을 이용해 꽃반지를 만든 로키가 올룬의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웠다.
 
“대답은?”
“…시녀라면 응당 제가 모시는 자의 놀이에도 어울려 줘야 하는 법이죠.”
“그래.”
 
제 손에도 반지를 끼운 로키가 올룬의 손을 마주잡았다.
꽃과 나무사이를 누비는 봄바람이 내는 소리는 기묘하게도 흥겨워, 마치 결혼식 축가같이 들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