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생각보다 진지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등장합니다. 약간 불편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슈토쿠 고교의 동문들이 유메의 가게에 오는 날, 신타로는 같이 학교를 다녔던 이들에게 하나씩 청첩장 봉투를 나눠주었다. 타카오는 그것을 받아들자마자 물었다.
“신짱, 신짱! 어떻게 설득한 거야?”
그 물음에 신타로는 멈칫했지만 이내 청첩장을 다 나눠주었다. 그리고 타카오의 물음에 답했다.
“꽤나 힘들었다는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였고, 또 예상했던 것 이상이더군.”
“그거 무슨 뜻인데?”
신타로는 그 말만 마치고 아무 말이 없었다. 상황은 이랬다. 신타로가 결혼을 허락받으러 갔을 때, 유메의 부모님은 찬성했지만 오빠들의 반대가 무척 극심했다.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 중 하나는 ‘정말로 둘에게 결혼이 필요한 요소인가?’였다. 이건 전적으로 유메의 작은오빠 신페이의 의견이었다. 그는 가정 문제를 다루는 변호사였는데, 이혼 관련 문제도 꽤 많이 다룬 적이 있었다. 물론 신타로를 오랫동안 겪어 보았지만 결혼은 정말 중요한 사안이었기에 마냥 환영할 수가 없던 신페이였다.
“우리는 오랫동안 미도리마 군이 유메링 옆에서 애정을 주는 건 보았고 그건 인정하지만, ‘하시모토 유메’가 아니라 ‘미도리마 유메’가 되는 일이니까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내가 여태까지 다뤄 온 일들도 그런 문제가 많아서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신타로의 옆에서 신페이의 말을 듣던 유메는 결혼이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더욱 체감하고 있었다. ‘하시모토 유메’가 아니라 ‘미도리마 유메’가 되는 일. 결혼은 그런 일이었다. 그래서 유메는 조금 자신이 없어졌다. 자신을 잃고 타인의 품에 속해 사는 걸 자신은 할 수 있을까. 유메는 그 대화가 있은 이후에 많이 울었다. 마냥 좋다고 결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서일까. 그런 유메를 달래주고 확신을 주려고 노력한 신타로였다.
“유메.”
“으응.”
“당장 결혼하기 힘들겠다면 나중에 해도 좋다는 것이다.”
“응.”
“내가 확신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것이야. 우리가 조금 더 생각해 봐도 좋을 것 같군.”
“그렇게 해요.”
둘의 애정전선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다 보니 결혼은 암묵적으로 뒤로 미뤄지고 있었다. 하지만 유메는 나름대로 생각이 많아졌다. ‘하시모토 유메’가 아닌 ‘미도리마 유메’라는 삶을 선택해서 후회하지 않을까? 유메는 공책에 천천히 자기의 현재 삶과 미래에 변할 삶들을 적어보기 시작했다. 가족과 함께 살 수 없는 것, 책임져야 할 것부터 꼼꼼히 적어가다가 문득 신페이에게 말했다.
“신 오빠.”
“응?”
“나, 결혼할래! 자신 있어!”
“으응?”
그렇게 말하며 신페이에게 공책을 내민 유메였다. 그 안에서는 유메가 화가 나거나, 슬퍼하거나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찾아올 때 신타로가 해 주었던 위로 섞인 언행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꽤 중요한 상황에서 다투었을 때 신타로가 대화를 풀어가는 방식도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한참 그것을 들여다 본 신페이는 공책과 유메를 번갈아 보다가 입을 열었다.
“미도리마 유메로 살아도 괜찮겠어?”
“어떤 경우에도 유메링은 유메링이잖아? 하시모토이든 미도리마든 내 이름이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
그 말에 신페이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무엇이 됐든 ‘유메’라는 인물 자체가 변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는 알겠다며 자신이 료스케(유메의 첫째 오빠)를 설득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료스케까지 설득당하며 두 사람은 결혼에 발을 올리게 되었다. 예식장은 자그마한 펜션을 빌려서 하기로 했다. 야외 결혼식은 전적으로 유메의 요구사항이었는데, 신타로는 유메와 결혼한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 그가 하자는 것들에 맞춰주었다. 게다가 지루한 결혼식은 유메와 맞지 않기도 했고. 그런 이야기를 늘어놓으니 타카오가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결론은 허락은 다 유메 선배가 맡은 거네?”
“그런 셈이지.”
“역시 유메 선배는 대단하다니까. 선배한테 잘해줘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는걸, 신짱.”
“유메에게는 항상 잘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긴 그렇지만. 그래서, 선배는 언제 와?”
얼마 되지 않아 유메가 부엌에서 나왔고 이미 신타로가 먼저 청첩장을 나눠줬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여러분,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결혼식장에서도 뵈었으면 좋겠어요!”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유메에게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보냈다. 생글거리며 신타로 옆에 앉은 유메는 자연스럽게 슈토쿠 농구부 출신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대망의 결혼식 날. 유메는 일찍 일어나 준비를 마쳤다. 친구가 직접 디자인한 드레스를 입어보고 머리 맵시며 화장까지 직접 본인이 주도했다. 친구들이 도와주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유메의 아이디어였다. 장신구 하나하나 신경을 기울여 고르기까지 한 그였다. 그러니 예쁘다는 말 한 마디가 신타로의 입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오빠들이 천사같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고, 친구들도 유메의 안목을 칭찬하고 있었다. 신타로와 유메의 아버지가 혼인 서약을 마쳤다. 정장을 갖춰 입은 신타로가 버진로드를 걸어 나오고 파란 수국 꽃다발을 든 유메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걷다가 신타로의 옆에 섰다. 결혼식 사회는 오츠보가 보기로 했고, 주례는 생략했다. 기적의 세대 멤버들과 슈토쿠 교고, 토오 학원, 그리고 세이린 고교 출신 인물들과 여러 사람들이 함께 한 결혼식이기도 했다. 무척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축하해준다는 게 유메로서는 더없이 기뻤다. 처음에는 못마땅했지만 어느 누구보다 행복하게 웃는 유메를 보며 오빠들은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유메의 행복이었으니까. 예쁘게 웃는 유메를 보며 신타로 역시 웃어버렸다. 그런 신타로를 보던 오츠보가 다소 짖궂은 투로 말했다.
“그렇게 서로 좋아하니까 나중에 춤 출 때도 서로 얼굴 보면서 잘 출 수 있죠?”
그 질문에 신타로와 유메는 조금 흠칫하더니 괜시리 시선을 피했다. 사실 둘 다 결혼할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춤이었다. 유메야 중학 시절과 대학 시절 댄스부에 고등학교 시절 치어리더까지 한 경험이 있어 춤에 문제는 없었지만 문제는 신타로였다. 춤 자체에 전혀 관심도 없었고, 추게 될 일도 없겠거니 싶었는데 결혼식 피로연이라는 중요한 일이 생겼다. 결혼식에서 춤을 뺄까 했지만 집안 식구들(특히 유메의 오빠들과 신타로의 여동생)이 그건 말도 안 된다며 난리가 났기에 둘은 하는 수 없이 춤을 춰야만 했다. 미리 피로연 사회자로 섭외한 타카오의 도움으로 신타로도 어느 정도 춤 스텝은 익힐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아주 능숙한 건 아니어서 종종 유메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두 사람의 결혼이 봄에 있었기에 피로연장 부근에는 많은 벚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바람이 머리를 몇 번이고 흐트려놓아서 유메가 무척 난감하긴 했지만 날씨도 좋았고, 바람에 날리는 꽃잎들이 결혼식장을 더욱 설렘 가득한 공간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미야지를 비롯한 슈토쿠 일원들, 토오와 세이린에서 미리 준비한 영상을 다같이 보았다. 생각해 보니 10여 년 이상을 연애한 둘이었다. 틈틈이 다툴 때도 있었지만 지금과 같이 손을 잡았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두 사람이었다.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던 경기 때의 모습도 올곧게 담겨 있는 그 영상을 보며 신타로와 유메는 단단히 손을 맞잡았다. 둘의 결혼식이 끝나고 곧 타카오가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십니까. 오늘의 결혼식 피로연을 함께 하게 된 타카오 카즈나리입니다!”
그 말에 모두가 박수를 쳤고, 타카오는 바로 말을 이었다.
“여러분 오늘의 선남선녀 두 사람에게 먼저 축하의 박수를 건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가족과 친지들이 열띈 박수를 보내자 신타로와 유메는 손을 꼭 잡고서 주변에 인사를 했다. 가운데 놓여 있는 케이크를 자르며 두 집안의 부모님이 케이크를 나눠먹는 모습을 본 신타로와 유메는 작게 소곤거렸다.
“조금만 먹을래.”
“알았다는 것이다.”
“진짜로 조금만 잘라줘야 해요. 알았죠?”
몇 번이고 신타로에게 확답을 받고서야 유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 사람이 케이크를 나눠먹을 때 유메는 장난기가 돌았다. 케이크를 포크로 떠서 신타로의 입에 넣으려는 찰나, 유메의 손이 생크림을 훑고 신타로의 얼굴에 그것을 발랐다. 순간 신타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분위기가 싸해지려는 건가 싶던 하객들은 신타로가 포크에 케이크를 뜨는 듯하더니 유메가 했던 것처럼 생크림을 유메의 입가에 발랐다. 화장 때문에 경악한 유메였지만 이미 신타로 역시 화장을 한 상태였는데 크림이 발라진 터라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눈치를 보기 시작하던 유메는 도망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크림이 얼굴에 더 묻지 않게 도망가려고 걸음을 뗀 순간 그의 몸이 휘청거렸다. 가뜩이나 높은 하이힐을 신었는데 뛰려고 했으니 중심을 제대로 잡을 수 없을 법도 했다. 야외 잔디밭에서 결혼식을 하는 터라 크게 다치지는 않겠지만 망신당할 게 뻔했다. 유메는 넘어질 걸 생각하고 눈을 꾹 감았다. 그렇지만 뭔가에 쓸리는 감촉이 느껴지지 않아 눈을 뜨니 못마땅한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신타로가 있었다.
“조심하라는 것이야. 중요한 날에 다치면 속상해 할 거면서.”
“히. 고마워요.”
그런 대화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주변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어리둥절한 채로 주위를 돌아보다가 문득 유메의 허리에 신타로의 팔이 감겨져 있다는 걸 깨달은 두 사람은 민망함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타카오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아니, 둘은 연애한 지 10년이 넘었으면서 뭐가 그렇게 부끄러워요?”
그 말에 조용히 하라는 듯 미간을 찌푸리는 신타로를 보며 타카오는 웃음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하객들이 웃기 시작하자 그제야 웃는 타카오였다. 그에 더욱 못마땅한 표정을 하는 신타로였지만 유메가 그러지 말라는 얼굴로 고개를 젓자, 그는 표정을 풀고, 감겨있던 팔도 역시 풀었다. 얼굴에 크림이 묻은 채로 신타로를 보던 유메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렇게 사소한 일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면 좋겠다는 마음에 결혼을 결정했던 그였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단단히 저를 붙잡아 줄 신타로라는 걸 느껴서 유메는 신타로의 손을 잡았다. 손이 잡히자 신타로 역시 유메를 보고서 미소지었다. 그런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타카오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사랑하는 두 사람을 더욱 축복하는 마음에서 제가 이것저것 준비했으니 여러분 끝까지 함께 해 주세요!”
모두가 큰 소리로 ‘네!’ 하고 외침과 동시에 박숙가 계속해서 쏟아졌다. 바람이 불어 꽃보라가 일어나자 박수치는 것을 멈추고 일제히 벚꽃을 바라보는 이들이었다. 유메 역시 벚꽃을 바라보다가 제 손 위에 떨어진 꽃잎을 꼭 쥐고 눈을 감았다. 언제나 신타로와 행복하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빌고 있던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