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님
정말 좋은 날이었다. 새파란 하늘에는 흰 구름이 그림처럼 흐드러져 있고 햇빛은 닿는 모든 것이 반짝일 정도로 화창하고 밝았으며 잔디에는 흐릿한 이슬이 맺혀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웨딩 사진을 찍어도 좋을 정도로 아름다운 날이었다.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앗 매그너스 님, 여기 넥타이 흐트러졌어요!”
“뭐?! 어디!”
“......”
그러니까 그게 진짜 웨딩 사진을 찍고 싶단 말은 아니었는데...
벨데로스는 흐릿한 눈으로 흔들린 사진이 뽑혀 나오는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한참 내려다보다가 먼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삼켰다. 사진기가 향하던 방향에는 검은 머리카락을 늘어트린 흰 드레스의 여자와 용의 일부를 몸에 달고 있는 흰 수트의 남자가 아주 다정하게 서 있었다. 조금 흐트러진 붉은 넥타이를 매어주는 하얀 손이 참으로 어여뻤다. 남자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는지, 그는 아주 사나운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다정한 미소를 걸치고 여자의 뺨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허망하게 바라보고 있는 벨데로스의 옆에서 갈가마귀 색 머리카락의 노바 족 여자아이가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빠랑 엄마 너무너무 예쁘다~!”
“......”
속 편해서 되게 좋으시겠어요.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그것은 단 하루 전으로 되돌아간다... 별 것도 없다. 벨데로스의 옆에 있는 이 아가씨, 그러니까 현 헬리시움의 왕녀(라고 불러도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고하신 헬리시움의 주인과 안주인이 아니라 주인이 아니어서 그냥 안 주인인 분께서 대형 사고를 친 결과물께서 ‘엄마랑 아빠는 대체 있는 게 뭐야 반지두 없구 사진두 없구 친구두 없어’ 하고 엉엉 울며 드러누웠기 때문이었다.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아빠, 아빠랑 엄마는 언제 결혼했어?’
‘결혼? 안 했는데?’
‘으아앙!’
그러니까 일차적인 원인은 지고하신 헬리시움의 어쩌구이자 한 아이의 아비라는 걸 본인도 기억 못 하는 것 같은 매그너스라는 남자의 실언 탓이었다.
‘...아니 그, 결혼 안 한 건 맞잖냐. 그렇다고 내가 널 안 사랑한다는 게 아니고...’
‘됐어요, 정말! 애 앞에서 말을 가릴 줄도 몰라!’
‘아니... 아니 그게...... 아니......’
‘으에엥 엄마 아빠 아무것두 없어.’
‘빠른 시일 내로 예물 맞춥시다...’
‘......알았다.’
정도로 결론내린 당사자 두 명과는 다르게 작은 왕녀님은 도무지 만족하지를 못해서, 결국 부모 둘을 닦달해 결혼사진을 찍게 하... 는 것까지는 좋았다. 왜 저주받아서 혼자 그림도 잘 그리는 캔버스를 두고 초상화가 아니라 사진을 찍는지도 굳이 묻지는 않겠다. 문제가 있다면 사진사가 벨데로스라는 점이다. 그리고 지금 그는 세 시간째 서서 ‘찍습니다 하나둘!’ 만 하고 있었다. 물론 단순히 그가 서 있던 시간만을 생각하면 그렇고, 그 이전에 드레스 고르고 양복 고르고 뭐 하고 장소 고르고 어쩌고 했던 것까지 생각한다면, 그리고 아직도 해가 쨍쨍하다는 점을 깨달았다면, 벨데로스의 고생이 꼭두새벽부터 시작되었다는 점 정도는 간단하게 추측해낼 수 있을 것이다......
“아, 르네. 드레스에 꽃잎이 들어간 것 같은데.”
“어디, 어디요?”
“여기, 르네라는 꽃잎이.”
“뭐야아~ 매그너스 님두~”
그리고 이 꼬라지를 그 동안 계속 봐야만 했다는 점도.
이 돌아버린 인간들아. 아무리 그간 죽도록 삽질을 했다고 한들 남의 앞에서 이런 꼴을 보여줘서는 안 되는 법이 아닌가. 애 생기기 전에는 이딴 말은 안 주고받았다. ‘매그너스 님 어떤 게 꽃이게요?’ ‘어 니 얼굴 옆에 있는 게 꽃이고 그딴 짓 좀 하지 말랬지’ 라면 몰라도.
둘의 사이가 이렇게까지 끈적끈적 말랑말랑해진 것은 전적으로 벨데로스의 옆에서 눈을 반짝이고 있는 어린 애기씨의 덕이었다. 아빠를 꼭 닮은 페리도트 색 눈동자에 엄마처럼 동글동글한 뺨을 하고 있는 귀여운 어린 용족. 두 부부(결혼도 안 했지만)는 어린 딸의 떠밀림에 홀랑 넘어가, 어느샌가 마치 빚어진 경단처럼 동글동글하고 꿀 시럽처럼 달콤한 사이가 되어 버리고 만 것이었다.
“엄마랑 아빠가 사이좋으니까 참 좋지, 그치요?”
“...아, 네.”
아뇨 별로... 별로요. 정말 별로요. 물론 매일같이 삽질하며 싸우는 것도 거지같긴 했지만 이것도 정말 싫어요. 부하 된 도리로써 이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어야만 했던 벨데로스는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을 삼키며 다시 한 번 더 카메라를 잡았다.
“매그너스 님, 르네 님, 여기 다시 보시구요...”
“으응, 으응.”
“뭐야, 날 봐.”
“앗, 매그너스 님...♥”
“저기요...”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 들어... 흐르지 못하게 또 살짝 웃어...
결국 벨데로스는 노을이 차오르기 직전에야 웨딩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는 슬픈 줄거리로, 폴라로이드 사진 속에 든 두 부부는 몹시 행복하고, 그리고 악당 같아 보였으므로, 언젠가 아주 먼 미래에, 모든 일이 끝난 뒤에, 모든 것이 사라진 뒤에도, 그것만큼은 영원히 남아 있었다는 그런 결말의 이야기.